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발터 모델 (문단 편집) ==== 아르덴 대공세 ==== 10월 말에 '라인 강 수비 계획'을 처음 전해들은 모델은 히틀러가 설정한 작전 목표가 불가능함을 잘 알고 제5기갑군 사령관 [[핫소 폰 만토이펠]], 자신의 오랜 참모장인 [[한스 크렙스]]와 2개월에 걸쳐 의논하며 대안 작전[* 작은 해결책, 작전명 가을안개; Operation Herbstnebel]을 제안, 어떻게든 대규모 공세 작전을 취소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12월 2일, 육군참모총장 하인츠 구데리안이 동부전선에서 효율적으로 방어전을 펼치고 있는 부대를 [[아르덴 대공세]]로 투입하는 것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여 시작된 회의에서 모델과 만토이펠은 안트베르펜을 목표로 하는 것은 확률이 낮은 도박임을 강조하며 '작은 해결책'을 다시금 제안했다. 모델은 침착하고 감정이 들어가지 않은 목소리로 긴 시간 동안 구체적인 자료들을 제시하며 발언했고, 히틀러마저도 중간에 끼어들지 못한채 말없이 경청했다. 결국 총통이 모델에게 양보한 것이 있다면 초기 작전 목표대로 공세를 시작하나 진행 과정에서 안트베르펜 점령 확률이 낮아질 경우에는 모델이 제시한 '작은 해결책'으로 작전 목표를 전환한다는 것이었다. >"생사가 걸린 중요한 문제에 있어 모델 원수와 나를 지원하는 사항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회의에 참석했던 80명의 고위 장교들 중 어느 누구도 애매한 문제를 명확히 하기 위해 발언하거나 질문하려 하지 않았다." >---- >[[핫소 폰 만토이펠]] 기갑대장 아르덴 대공세의 초반에는 히틀러와 요들의 작전안에 명시된 공격 시간(11:00)을 새벽 5시 30분으로 변경, 칠흑 같은 안개 속 연합군의 시야가 완전히 가려진 틈을 타 미리 정해진 목표에 효율적인 포격과 동시에 고사포 진지에서 전조등을 비추어 보병의 돌격로를 이끌어낸 다음, 일몰 후에 전차를 투입하여 전과를 확대시키는 만토이펠과 모델의 새로운 작전안으로 기습에 성공을 거두었다. 공세 초기 독일군의 성과 덕분에 독일 국민의 사기가 진작되었고, 국방군에 대한 신뢰도와 인기가 급상승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공권이 완전히 연합군 측에 있었기 때문에 하늘이 맑게 개인 12월 23일에 진격 속도가 둔화되었고, 이날 모델은 [[알베르트 슈페어]]와 [[한스 크렙스|크렙스]]에게 작전이 실패했음을 명시적으로 알리며 히틀러에게 공격 중단을 건의했다. 12월 28일에야 히틀러는 모델의 지속적인 건의를 받아들여 '작은 해결책'으로 전환했지만 제공권을 장악하려던 [[보덴플라테 공세]]가 실패로 돌아가는 등 너무 늦은 후였다. 팔레즈 포위망에서 탈출시키고 '서부 전선의 기적'을 통해 간신히 지켜낸 B집단군의 정예 병력과 장비 및 연료 대부분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파일:attachment/600_Model_Arnhem.jpg]] >병사들과 대화를 마치고 돌아온 모델 원수는 부관인 하인리히 슈프링어 SS소령에게 자신의 차량에 동승할 것을 명령했다. "슈프링어." 잠시 후 모델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는 침울했고, 시선은 여전히 그들이 가야 할 눈 덮인 언덕을 향한 채였다. >'''"지휘관은 휘하의 장병들을 자기 자식처럼 여겨야만 하네. 그리고 자네도 알다시피 상황이 그들에게 너무도 가혹하군.”''' >---- >1945년 1월, 아르덴 대공세 중[* 2000년, 하인리히 슈프링어(Heinrich Springer)의 인터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